국창 박동진이야기

명인명장전 - 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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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4회 작성일 22-01-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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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백일동안 독공하면서 [망가진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독공터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절터의 흔적을 알려주는 기와 조각만 흩어져 있다.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 진잠국민학교 뒷산. 길 안내를 해준 박동진의 사촌동생 교진씨(60)에게 산 이름을 물으니 "예전에 학교소유 산이어서 지금도 학교산이라 한다"고. 박 명창이 독공하던 시절의 행정 구역은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내동리.

호남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산허리 한쪽이 잘려 나갔지만 산림도 울창하고 골짜기에 눈이 쌓여 오르기가 그리 수월하진 않다. 독공터 뒤편에 신선암이 있어 아늑하게 바람막이 구실을 하고 바위밑 옹달샘은 물이 마른 채 흔적만 남았다. 박동진이 독공하던 서른살때 국민학교에 다녔다는 교진씨는 "형님에게 먹을 것을 갔다가 드리거나 땔감나무를 하러 오면서 독공하던 모습을 보았다." 면서 "잔디로 밑부분에 담을 쌓고 가마니로 벽을 친 후 그 안에서 소리 공부를 했다"고 전해준다.

○ 토굴서 생쌀로 백일

그 당시의 얘기를 박동진의 육성으로 들어본다.



"목청을 다시 찾기 전에는 절대로 세상에 나가지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뿐이었다. 토굴 안에서 생쌀을 씹어 먹으며 하루 열 여덟시간씩 소리에 매달렸다. 그러기를 40여일, 쉰목청으로 소리만 질러댔더니 이가 흔들리고 입술은 부르터서 당 나발 같았고 얼굴과 몸은 물에 빠진 시체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이러다가는 목소리를 되찾기는 커녕 목숨조차 부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그곳을 찾아갔고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똥물을 가져다 주었으며 "똥물을 마시고 나니 거짓말처럼 부기가 빠져나가더라"고 한다. 그렇게 백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독공터에서 바라보니 한밭(대전)을 감싸고 있는 구봉산이 손에 잡힐 듯 마주 보인다. 이쯤에서 박동진의 출생에서 독공하기까지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더듬어 보자.

1916년 태어난 박동진의 고향은 충남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 352번지. 지금은 공주시 무릉동. 토종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로 불리는 그의 고향 생가터는 목축장 오합가 들어서 있고 [이가 시리도록 차고 시원했다]는 우물도 이제는 쓰지 않고 있다.

할아버지 대에 몇백석 거두던 집안은 아버지 대에서 가세가 기울어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 겪는 배고픔과 설움을 일찍부터 겪으며 살아야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면서기라도 시킬 요량으로 아들을 대전의 중학교에 보냈다.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날 그의 인생 항로를 결정지은 사건이 일어났다. 현재 대전극장 자리에 협률사라는 단체가 들어와 공연을 했다. 이동백 송만갑 장판개 이화중선 김창룡 등 조선 천지를 뒤흔들던 쟁쟁한 명창들의 소리를 들은 동진은 "저들은 인간인가 신선인가"하면서 "눈깔이 홀랑 뒤집혔다"고 한다.

그는 면서기고 지랄이고 모두 때려치우고 가출하여 청양 장병두 선생을 찾아가 '사랑가' '옥중가'등 토막소리를 배웠다. 일년쯤 배우고 나자 선생님의 소리 밑천이 바닥나 서울 정정렬 선생에게 소리 공부를 배우려고 상경하던 중 대구 봉산 동에서 기생들 소리 선생으로 머무르게 된다.

이 시절 "젊어서 여자를 알면 소리를 망치니 여자보기를 원수 보듯이 하라."는 선생님들의 당부가 있었지만 혈기방장한 젊은 총각이 젊은 여자들 틈에서 지내다 보니 [연애사건]을 저지르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조카인 일본인 여대생과의 스캔들로 경찰서에 끌려가 형사에게 오뉴월 개 맞듯 맞고 경주 권번으로 옮겼다가 스물두 살때 서울로 올라왔다.


○ 흥보가 5시간 완창

서울에 온 박동진은 [조선성악연구회]에 다니며 꿈에도 그리던 정정렬 선생에게 소리 공부를 하게 된다.

그 무렵 명월관등에서 소리를 하면서 돈도 벌고 북만주 신의주 북경 남경 서주까지 공연을 다녔다.

앞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스물 다섯살때 목소리가 제기능을 상실했다. 소리꾼에게는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다. 절망속에 몸부림치다가 그 다음해엔 자살하려고 독약을 마셨다. 그러나 두 달 자리에 누었다가 일어났다. 집에서 결혼하라는 성화에 못 이겨 낙향, 혼인을 했으나 결혼 생활도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의 아내와 아들이 잇따라 죽었다. 서른 살이 되려던 섣달 그믐날 박동진은 보따리를 싸 산으로 들어가 독공했 다. 산에서 내려온 박동진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햇님국극단] [우리 국악단]등을 따라다니며 고수, 무대감독, 판소리 편곡,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6.25직후 만난 현재 부인 변기여사 (65)의 내조 속에 골방에 들어 박혀 하루 10시간씩 6년간 소리 공부에 전념한 결과 68년 국립국악원 강당에서 [흥보가]를 5시간 동안 완창하여 국악계를 놀라게 했다. 창극이나 입체창으로 30분 이상 소리를 하지 않았던 통례를 뛰어넘은 쾌거 였기 때문이다.

69년 [춘향가] 8시간 완창발표회 후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를 차례로 발표했고, 연이어 [변강쇠 타령] [배비장 타령] [옹고집 타령] [숙영낭자전] [무숙이 타령] [강릉 매화전]을 발표하여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또한 73년에는 [이순신전]을 9시간 40분 걸려 완창했으며 같은 해 11월 [적벽가]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악계에 거목으로 우뚝 섰다.

박동진이 보유하고 있는 [적벽가]는 정춘풍-박기홍-조학진으로 이어진 것.


○ 3 백시간 분량 입력

그는 정정렬에게 [춘향가], 박지홍으로부터 [흥보가], 유성준에게 [수궁가], 김창룡의 동생 김창진으로부터 [심청가]를 배웠다. 스승들로부터 충분한 도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정정렬의 유형] [유성준의 유형]이라는 [소리의 덩어리]만을 제공받은 셈이다. 또한 소리판의 그늘에서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 명창들의 소리를 가슴깊이 새겨 스스로의 것으로 소화시켰다.

그래서 박동진의 소리는 "앞서 이름을 떨친 명창들의 음색 음길이 음높이 등을 기억하고 가다듬고 재생해내는 피나는 탐색 끝에 자득한 그런 소리다" 라고 이국자 교수는 [판소리 예술미학]에 쓰고 있다.

그것은 판소리 문화의 보수적 틀을 깨고 대중성을 창출해낸 독창성이 돋보이지만 온갖 바디들이 혼교된 박동진의 [새로운 바디]에 의혹과 질타를 보내는 측도 있다.

그러나 [변강쇠 타령]등 판소리 열두 마당 속을 파고든 끈질긴 [광대 근성]과 용암같은 예술혼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하다.

박동진은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서너 시간씩 소리연습을 한다."는 것. 연습을 하지 않으면 소리도 안나오고 사설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머릿속에는 [춘향가] 10시간, [심청가] 6시간, [흥보가] 5시간, [수궁가] 4시간, [적벽가] 8시간 등 3백시간 완창 분량이 입력돼 있다" 고...

수첩에 깨알같이 적힌 바쁜 공연 스케줄 속에서도 논개와 권율 장군의 일대기를 판소리로 만드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해학과 익살이 걸쭉한 육담과 어우러져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소리는 국 악을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서게 했다.


○ [예수일생] 판소리로/중중모리 가락에 "할렐루야"."조오치"/완창엔 7시간 걸려

박동진 명창은 [판소리 전도사]라는 별명도 듣고 있는 서울 초동교회 장로.

"어화 세상 사람들아/이내 한말 들어보소/우리 주님 부활하셨네/십자가상에 매달려/창칼에 찔리신 우리 주님..."

비감이 넘쳐흐르는 계면조가 힘찬 우조로 바뀌면서 중중모리로 이어진다.

"주검 속에서 살아 나셨네/우리 주님 부활하셨네/할렐루야 얼씨구 좋다/할렐루야 절씨구/할렐루야..."

판소리 [예수전]의 3부 [주님 고난과 부활]에 나오는 대목이다.

극작가 고 주태익 선생이 판소리 사설체로 쓴 [예수전]에 곡을 붙인 1부는 [구주 탄생], 2부는 [갈릴리의 봄]이다. 3부는 박동진이 글도 쓰고 곡도 붙인 것. 3부까지 완창엔 7시간이 걸린다.

지난 70년 첫 공연이후 교회에서 부르면 달려가 판소리 가락으로 복음을 전한다.

그는 "그때 주태익씨의 대본을 읽고 예수가 같은 동양인이고 서른 세살의 짧은 나이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주의 종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가 고난을 당하는데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가 들어가는 것은 예수 고난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내 가락에 내가 좋아 터져 나오는 추임새에 불과하다" 고...

현재는 [모세전] [팔려간 요셉]등을 판소리로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국민일보 1994.02.19 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