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창 박동진이야기

명창소개 - 판소리 이백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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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22-01-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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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朴東鎭)은 191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7세 때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였더니 사계에서는 상당히 늦은 편이라 하겠다.
그는 맨처음 김창진(金昌鎭) 명창을 사사하여 심청가를 이수하였고, 다시 정정열 명창의 문하에 들어가 춘향가를 학습하였으며 그후 유성준 명창에게 수궁가를 그리고 가선 박기홍의 문도였던 조학진 명창에게 적벽가, 박지홍(朴枝洪) 명창에게 흥보가를 전수받았으니 판소리 다섯 마당을 다섯 명창에게 배운 사람도 드문 일이다. 그러나 박동진은 1940년 이후의 일제로 인한 겨레의 수난기에 처하여, 마음놓고 제대로 판소리 연마에 정진할 수 없었다가 해방 후로 재연마하게 되었던 것이다.


1947년 창극의 붐을 타고 박동진은 조향창극단을 조직하고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순회공연하다가 6·25로 인하여 부득이 창극단을 해산하였다. 1952년 햇님여성국극단이 부산에서 재조직되었을 때, 그는 음악부를 담당하여 햇님국극단에서 공연되는 모든 작품을 작곡하고 단원들을 지도하여 왔는데 1960년 햇님국극단이 해산되고 말았다.
박동진이 판소리에 일의전심하고 재연마에 정진하게 된 것은 1961년 그가 국립국악원에 몸을 담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박동진은 본격적으로 판소리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아침 일찍이 출근하면 골방 같은 창고에서 온종일 자장단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차례로 각고탁마하였다. 이러기를 5년 그는 지극한 학성과 끈질긴 인내, 피나는 노력으로 필경 득음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박동진은 1968년 흥보가 전편을 장장 5시간 동안 휴식없이 연창하여 경의적인 기록을 세움으로써, 창악인들은 물론 판소리 애호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박동진은 이어서 춘향가 전편을 서울 명동에 있었던 국립극장에서 놀랍게도 8시간에 걸쳐서 연창하여 그의 초인적인 정력에 청중은 그저 탄성할 뿐이었는데 이는 판소리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박동진은 또 1970년에는 심청가를, 1971년 적벽가, 1972년 수궁가를 해마다 연창회를 개최하여 그 실력을 세상에 과시하였다.
박동진은 이렇듯이 해마다 연창회를 가짐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1968년 서울신문사제정 한국문화대상 국악부문에 수상하였으며, 아울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명창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하게 다지게 되었다.


그는 국립창극단장을 역임한 바 있고 라디오 방송, TV에 출연하면서 후진양성에 헌신하고 있는데, 그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고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그는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언제나 온화근신하는 그의 인품은 비길 데 없이 어질고 고매하여 창악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의 성음은 수리성으로 성량이 풍부하고 상중하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그의 특장은 적벽가이다. (자료출처 : 박황, 『판소리 이백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