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창 박동진이야기

국악계 전문가 2인이 말하는 명창 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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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8회 작성일 22-01-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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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판소리의 대가 박동진'

고(故) 박동진 명창은 일반적으로 판소리계에서 분류되는 소리의 계보를 갖고있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는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아 직속 제자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형태의 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창조적 판소리 개척자로서 고인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창조적 정신은 1968년 국내 최초로 5-6시간에 걸친 판소리 완창 공연을 시도해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학자 및 국악계 관계자들은 당시 박 명창의 완창 공연을 꺼져가던 판소리의 불을 다시 지핀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군산대학교 국문과 최동현 교수, 전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낸 최종민 동국대 교수로부터 박 명창의 삶과 업적 등에 대해 들어봤다.

▲최동현 군산대 국문과 교수 = 박동진 선생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판소리가 완전히 사라져갈 무렵이었다.

1968년 여섯시간에 걸친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통해 판소리가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완창 발표회라는 것은 박 선생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공연장에서 다른 국악 장르와 함께 중요 대목 몇편을 뽑아 부르는게 고작이었다.

박 선생의 완창 발표회는 처음과 끝을 갖춘 판소리의 완전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계기가 됐다.

더구나 박 선생의 완창 판소리는 여섯 시간을 앉아서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 일반 관객들에게 판소리가 재미있는 예술장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사라져가던 판소리가 대중속에 다시 살아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박 선생이 다른 명창들과 구별되는 또하나의 특징은 그만의 재창조 능력을 갖고있다는 점이다.

즉,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아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그는 여러 스승들로부터 조금씩 배워 익힌 소리를 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로 재창조해 낸 독창적인 소리꾼이다. 때문에 제자들도 그리 많지가 않다.

박 선생의 소리는 굉장히 즉흥적이고 일정한 형태가 있지 않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수가 되지 않는다.

그는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만의 독창성을 가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명창 중 한 사람이다.

▲최종민 동국대 교수 = 박 선생은 어려서 전국의 유명한 선생들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들이 송만갑, 정정렬등 당대 명창들이었다.

이들로부터 조금씩 소리를 배워나가다 본격적인 명창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62년 국립국악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당시 국악원 원장이 '국악원은 공부하면서 월급타는 곳'이라고 한 말에 감동을 받아 매일마다 새벽에 출근, 득음을 위한 훈련에 매달렸다.

그러다 68년에 흥보가 첫 완창무대를 가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흥보가를 시작으로 이듬해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등을 차례로 완창, 창조적 명창의 경지에 올랐다.

특히 당시 명동 예술극장에서 있었던 춘향가 공연의 경우 중간에 날계란 두개만 깨 먹은채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창을 이어갔는데, 이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대단한 기록이었다.

이는 다른 명창들도 하나 둘 완창 판소리에 도전하는 직접적인계기도 됐다.

박 선생은 생활이 무척이나 검소하고 깔끔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누구든지 청하면 달려가서 소리를 들려줬다. 국악 대중화에 그만큼 기여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